한국인의 장은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
한국인의 장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건강할까요? 장 속에 사는 미생물 분류로 갈리는 '장형'부터 한국 성인 대부분이 겪는다는 유당불내증까지, 그 차이의 정체를 뜯어봤습니다. 답은 '한국인이라서'가 아니라 '무엇을 먹어왔는가'에 있었습니다.
Aug 21, 2026
사람의 장내 미생물 생태계는 사람마다 제각각이지만, 크게는 몇 가지 '유형'으로 묶여요. 이걸 장형(enterotype) 이라고 부르는데요. 어떤 균이 그 사람 장에서 대장 노릇을 하느냐에 따라 나뉘는 큰 분류라고 보시면 됩니다.
건강한 한국인 890명의 장내 미생물을 분석한 연구에서는, 한국인의 장이 크게 두 유형으로 나뉘었어요.(mSystems, 2021)
- 박테로이데스(Bacteroides)형이 약 60%
- 프레보텔라(Prevotella)형이 약 40%
그리고 이 연구는 한국인 집단이 서양인들에 비해 프레보텔라형의 비율이 높은, 나름의 특징적인 분포를 보인다고 보고했습니다. 독일인과 한국인의 장내 미생물을 대규모로 비교한 다른 연구에서도 프레보텔라형은 한국인 쪽에서 더 흔하게 나타났고요.(Microbiology Research, 2023)
여기까지만 보면 "역시 한국인 장은 다르구나" 싶으실 거예요. 실제로 다른 게 맞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전문가들이 꼭 덧붙이는 단서가 하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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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의 기원
'한국인이라서'가 아니라 '한국인이 먹어서'
오늘 이야기의 핵심이기도 해요. 그렇다면 한국인과 서양인의 차이는 무엇이 만들었는가? 단지, 한국인이라는 혈통 때문일까요?
예상하시다시피 장형을 가르는 가장 큰 힘은 혈통이 아니라 식단이에요.
관련 근거를 찾아보자면, 이 연구를 예로 들 수 있겠어요. 식습관과 장형의 관계를 분석한 연구인데요. 이 연구에 따르면, 프레보텔라형은 식이섬유와 탄수화물 중심의 식단과, 박테로이데스형은 단백질과 동물성 지방 중심의 식단과 연관되는 경향을 보였어요.(Wu 외, Science, 2011)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코호트 연구에서도 채소·콩·해조류·발효식품이 풍부한 한국식 균형 식단이 특정 장형 및 대사 지표와 연관되는 것으로 나타났고요.(Nutrients, 2021)
이걸 더 직접적으로 설명한 연구도 있었습니다. 같은 한국인을 대상으로, 4주간 전형적인 한국식 식단과 미국식 식단을 번갈아 먹인 교차 임상 연구에서는, 사람이 바뀌지 않았는데도 식단에 따라 장내 미생물 구성이 달라진 것. 유전자는 그대로인데 먹는 것만 바꿔도 장이 반응한 겁니다.(Nutrients, 2019)
정리하면 이렇게 됩니다. '한국인의 장'을 만든 건 한국인의 유전자라기보다, 밥과 나물과 김치와 된장을 매일 올려온 그 식탁에 더 가깝다는 것. 태어날 때 정해진 게 아니라, 살아오면서 만들어진 결과라는 뜻이에요.
한국 = 발효식품의 나라
김치·된장이 장에 남긴 흔적
식단이 장을 만든다면, 한국 식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발효식품입니다. 김치, 된장, 청국장, 젓갈까지. 우리는 발효된 것을 유난히 많이 먹는 민족이에요. 이게 장에 흔적을 남기지 않았을 리 없겠죠?

관련된 연구는 계속 쌓이고 있어요.
비만에 속하는 한국 여성을 대상으로 신선 김치와 발효 김치를 8주간 섭취하게 한 연구에서는, 김치 섭취가 장내 미생물 구성 및 일부 대사 지표의 변화와 연관되는 것으로 관찰됐습니다. 김치 섭취와 장내 미생물·염증 지표의 관계를 살펴본 무작위 대조 연구도 있고요.(Han 외, Molecular Nutrition & Food Research, 2015)(보도자료 ‘김치 유래 유산균‘JW15’, 美 FDA NDI 인증 획득’)
다만, 이런 결과만 보고 "김치가 장에 무조건 좋다"로 곧장 단정하는 건 무리가 있어요. 우리가 오래 먹어온 음식이 우리 장 생태계와 오랜 시간 서로 맞춰져 왔다 정도로 이해하는 게 정확해요. 사람마다 반응 차이가 크고, 김치라면 나트륨처럼 함께 봐야 할 변수도 있으니까요. 발효식품이라고 무조건 만능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한국인은 ‘우유’에 취약하다?
유전자에 새겨진 진짜 차이
이번에는 조금 다른 얘길 해볼까요? 한국인의 장에는 식단으로도 바뀌지 않는, 쉽게 말해 ‘유전자’에 확실히 새겨진 차이도 숨어 있답니다.
바로 유당불내증이에요.

갓난아기 때는 대부분의 포유류가 모유·분유의 유당(젖당)을 분해하는 효소, 락타아제를 갖고 있어요. 그런데 젖을 떼고 나면 이 효소가 자연스럽게 줄어들어요. 사람도 마찬가지인데요. 다만 일부 집단은 성인이 되어서도 이 효소가 유지되도록 유전자가 진화했는데(락타아제 지속성), 이 변이가 동아시아 집단에는 거의 퍼지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한국·중국·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성인은 유당 분해 능력이 떨어지게 됐죠. 실제 여러 자료에서는 동아시아인의 유당불내증 유병률은 약 70% 이상으로 보고돼요.(미국 국립보건원 NIH·국립의학도서관)
더 재미 있는 건 이게 엄청 오래된 이야기라는 점입니다. 조선시대 인골의 고대 DNA를 분석한 연구에서도, 당시 한국인이 이미 '유당 비지속' 유전형을 갖고 있었음이 확인됐습니다. 관련 유전자는 2번 염색체에 있는데, 쉽게 말해 우유 분해 효소를 '계속 켜둘지'를 정하는 스위치 역할을 합니다. 동아시아인은 대부분 이 스위치가 성인이 되며 꺼지도록 되어 있어요.(고고학 유적 인골 대상 락타아제 유전자 분석)
무슨 뜻이냐면요. 우유만 마시면 속이 부글거리고 화장실이 급해지는 게, '내 장이 약해서'도 '내가 관리를 못 해서'도 아니라는 겁니다. 한국인 대부분의 몸이 그렇게 설계돼 있어요. 이건 노력이나 식단으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물론 여기에도 개인차가 있습니다. 같은 유전형이라도 증상 정도는 사람마다 달라서, 소량의 우유나 발효 유제품(요구르트·치즈처럼 유당이 이미 줄어든 것)은 별 문제 없이 드시는 분도 많아요. '유전형이 있다 = 무조건 심한 증상'은 아니라는 것도 함께 기억해두시면 좋겠습니다.
한국인의 장, 최근 급격히 변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한 문장으로 모으면 이렇습니다. '한국인의 장'은 한국인이라서 고정된 특징가 아니라, 살아온 방식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라는 것.
그리고 그 결과는 최근 격변(?)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데요. 식생활이 빠르게 서구화되면서, 가공식품은 늘고 식이섬유 섭취는 줄면서, 젊은 세대의 장은 이전 세대의 장과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산업화된 사회 전반에서 식이섬유 섭취가 급감하고 장내 미생물 다양성이 낮아지는 경향이 여러 연구에서 지적된 바 있고, 여기서 한국도 예외가 아니랍니다.

그래서 "한국인이니까 장이 이렇다"는 말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그 의미가 희미해지고 있어요. 진짜 중요한 건 혈통이라는 평균값이 아니라, 지금 내가 무엇을 먹고 있느냐 라는 걸 꼭 기억해야겠습니다.
정리하자면,
정리하자면, ‘한국인의 장’이 다르다는 말은 완전히 맞는 말이라고 보기는 어렵겠습니다. 장형의 분포도, 우유를 소화하는 능력 등이 분명 집단 수준과는 조금 남다른 특징을 보이긴 해요. 하지만 그 차이의 상당 부분은 ‘한국인이라서’, ‘타고난 게’ 아니라 먹어온 것들이 만든 결과이고,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식탁을 따라 바뀌는 중입니다.
그러니 건강을 챙기기 위해서는 '한국인'이라는 평균이 아니라 '지금 내 장'이 어떤 상태인가 에 주목해야 해요. 아래와 같은 질문을 평소 더 자주 품는 게 장 건강을 지키는 비결이라면 비결이랄까.
- 어제는 뭘 먹었었는지,
- 오늘은 뭘 먹을 건지,
- 또 요즘 식이섬유는 잘 챙기고 있는지,
- 발효식품은 얼마나 먹는지,
- 가공식품에 기대는 끼니가 늘진 않았는지.
자주 묻는 질문 (FAQ)
Q1. 한국인이면 한국인 유래 유산균을 먹어야 하나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한국인 유래'라는 점 자체보다, 그 균이 어떤 근거로 무슨 역할을 하도록 선택됐는지가 더 중요해요. 균주를 고르는 기준은 혈통이라기보다 목적과 근거에 가깝습니다. 출신지가 마케팅 포인트가 되는 경우가 많지만, 그것만으로 나에게 맞는지를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Q2. 김치를 많이 먹으면 장이 건강해지나요?
발효식품과 장내 환경의 연관을 시사하는 연구들은 있지만, "많이 먹을수록 좋다"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반응 차이가 크고, 김치의 경우 나트륨처럼 함께 고려할 요소도 있어요. 특정 음식 하나보다 전체 식단의 균형이 더 중요합니다.
Q3. 우유만 마시면 배가 아픈데 유당불내증인가요?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성인기 유당 분해 능력이 낮은 것은 한국인에게 매우 흔한 특성이거든요. 다만 증상 정도는 개인차가 크고, 다른 원인일 수도 있으니 정확한 확인은 의료 전문가와 상담하시는 게 좋습니다.
Q4. 서구식으로 먹으면 장이 나빠지나요?
'나빠진다'고 단정하기보다, 식이섬유가 줄고 가공식품이 늘면 장내 미생물의 다양성이 낮아지는 경향이 여러 연구에서 관찰된다고 이해하시는 게 정확합니다. 어떤 식문화든 식이섬유를 충분히 챙기는 것이 장내 생태계에는 유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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